팔만대장경, 고려는 왜 대장경을 다시 새겼나

몽골의 고려 침입을 다룬 지난 글에서 팔만대장경을 잠깐 언급했었는데요, 사실 고려가 대장경을 새긴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어요. 이미 200년 가까이 지켜온 대장경이 있었는데, 그게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리면서 처음부터 다시 새겨야 했던 거예요. 오늘은 고려가 왜 대장경을 두 번이나 만들어야 했는지, 그리고 8만 장이 넘는 목판을 어떻게 완성해냈는지 자세히 살펴볼게요. 전쟁의 한복판에서 이런 방대한 작업을 해냈다는 사실이, 지금 봐도 놀랍게 느껴지는 이야기예요.

고려는 왜 처음부터 대장경을 만들었을까? 배경 설명

대장경(大藏經)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불교 경전 전체를 하나로 모은 것을 말해요. 고려가 처음 대장경을 새긴 건 11세기, 거란의 침입을 겪던 시기였어요. 이걸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즉 처음 새긴 대장경이라고 불러요.

초조대장경은 부처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담아 만들어졌어요. 거란이 물러간 것과 대장경 조판 사업이 시기적으로 겹치면서, 백성들 사이에는 대장경의 영험함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답니다. 이렇게 완성된 초조대장경은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보관되며 약 200년 가까이 고려를 지키는 상징적인 유산으로 여겨졌어요.

대장경은 왜 다시 새겨야 했을까?

몽골의 침입, 잿더미가 된 초조대장경

2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 과정에서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말았어요.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던 목판 전체가 소실됐으니, 고려로서는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을 거예요.

당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최씨 정권의 실권자 최우는, 이 대장경을 다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해요. 앞선 글에서 다뤘듯,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려는 염원과 더불어, 전쟁으로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려는 정치적 목적도 함께 담긴 결정이었어요.

대장도감, 16년에 걸친 대작업

1236년, 고려는 대장경을 다시 새기기 위한 전담 기구인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했어요. 이때 새로 만든 대장경을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즉 다시 새긴 대장경이라고 불러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는 ‘팔만대장경’이 바로 이 재조대장경이에요.

이 작업은 무려 16년에 걸쳐 진행됐어요. 나무를 베어 소금물에 절이고 말리는 준비 과정부터, 한 글자씩 정성껏 새기는 조각 과정까지, 어느 하나 쉬운 단계가 없었어요. 완성된 목판은 8만 장이 넘었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자 수는 무려 5천만 자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방대한 작업이었음에도 글자체가 시종일관 놀라울 만큼 통일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 사람이 나눠서 새겼을 텐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당시 고려의 목판 인쇄 기술과 관리 체계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팔만대장경은 어떻게 지금까지 남을 수 있었을까?

완성된 팔만대장경은 처음에는 강화도에 보관됐다가, 이후 조선 초기인 1398년 지금의 해인사(海印寺)로 옮겨졌어요. 이후 지금까지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이 목판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장경판전의 과학적인 설계도 큰 역할을 했어요. 건물 곳곳에 크기가 다른 창을 두어 자연스럽게 공기가 순환되도록 설계했고, 바닥에는 숯과 소금, 횟가루 등을 깔아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했어요. 별다른 현대적 장치 없이도 목판이 뒤틀리거나 벌레 먹지 않게 만든 이 설계는, 오늘날까지도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이에요.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팔만대장경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를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각 등재됐어요.

이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팔만대장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 번 잃어버린 것을 다시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느끼게 돼요. 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던 시기에, 오히려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이토록 정교한 작업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하게 다가와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다시 세울지에 대한 선택이 한 사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이에요. 고려가 대장경을 다시 새기기로 한 건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넘어, 흩어진 민심을 모으고 국가의 정신적 구심점을 되살리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무리 요약

고려는 거란의 침입 속에서 초조대장경을 처음 만들었지만, 이 소중한 유산은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불타버리고 말았어요. 이에 최우를 비롯한 고려 조정은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16년에 걸쳐 8만 장이 넘는 목판에 불경을 새기는 재조대장경, 즉 팔만대장경 사업을 완성해냈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이후 해인사로 옮겨져 600년 넘게 온전히 보존되며,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요.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정성껏 완성해낸 이 방대한 기록물은, 지금 봐도 고려인들의 끈기와 정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참고한 자료: 《고려사》, 《고려사절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개설서, 국내 고려시대사 및 불교사 연구 논문과 개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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