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옥저와 동예의 독특한 풍습을 살펴봤었는데요, 오늘은 같은 시기 만주 지역에서 성장한 또 다른 나라, 부여로 넘어가볼게요. 부여는 왕이 세상을 떠나면 많게는 수백 명이 함께 묻혔다는 순장 풍습으로 유명한 나라예요. 오늘은 부여의 순장 풍습이 왜 생겨났는지, 그리고 매년 12월 온 나라가 함께 즐겼다는 영고 제천행사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자세히 살펴볼게요. 지금 기준으로는 낯설고 때로는 섬뜩하게 느껴지는 풍습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부여는 어떤 나라였을까? 배경 설명
부여는 지금의 만주 쑹화강(松花江) 유역 일대에 자리했던 나라로, 고구려보다도 앞서 성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부여는 앞서 다룬 옥저나 동예와 달리 왕(王)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나름의 중앙 권력 체제도 갖추고 있었어요.
다만 부여의 정치 구조는 조금 독특했어요. 왕이 다스리는 중앙 지역 외에,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豬加)’, ‘구가(狗加)’라 불리는 지방 유력자들이 각자 자기 구역을 다스리는 ‘사출도(四出道)’ 체제를 이루고 있었거든요. 소, 말, 돼지, 개의 이름을 붙인 것도 흥미로운데, 이는 부여 사회에서 목축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왕은 이들 위에 있었지만, 각 지역에 대한 지배력은 아직 완전히 중앙집권화되지 못한 상태였답니다.
부여의 순장 풍습,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왕과 함께 묻힌 사람들
부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풍습이 바로 순장(殉葬)이에요. 순장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모시던 사람들을 함께 묻는 장례 풍습을 말해요. 중국 역사서에는 부여에서 왕이 죽으면 많을 때는 수백 명이 함께 묻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이 풍습은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도 살아있을 때와 비슷한 생활을 이어간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돼요. 왕을 모시던 사람들이 죽은 뒤에도 계속 왕을 섬길 수 있도록 함께 묻었다는 거예요. 물론 이건 순장된 사람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진,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잔혹한 풍습이었다는 점도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어요.
우제점법, 소의 발굽으로 길흉을 점치다
부여 사람들은 전쟁처럼 나라의 중대사를 앞두고 있을 때 독특한 방식으로 점을 쳤어요. 바로 ‘우제점법(牛蹄占法)’이에요. 소를 잡아 그 발굽 모양을 보고 길흉을 판단했는데, 발굽이 갈라져 있으면 흉한 징조로, 붙어 있으면 길한 징조로 여겼다고 전해져요.
이 풍습 역시 목축이 중심이었던 부여 사회의 특징을 잘 보여줘요. 소라는 동물이 단순한 가축을 넘어, 하늘의 뜻을 전하는 매개체로 여겨졌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형사취수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결혼 풍습
부여에는 또 하나 독특한 혼인 풍습이 있었어요. 바로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예요. 이건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풍습을 말해요.
오늘날 기준으로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 풍습은 남편을 잃은 여성과 그 자녀를 가족 공동체 안에서 계속 보호하고, 재산이 다른 가문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해석이 많아요. 유목·수렵 문화가 강했던 북방 민족들 사이에서 널리 나타났던 풍습이기도 해요.
영고, 온 나라가 함께한 제천행사
부여의 여러 풍습 중에서도 가장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건 바로 ‘영고(迎鼓)’예요. 영고는 매년 음력 12월에 열린 제천행사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였어요.
흥미로운 점은, 다른 나라들의 제천행사가 대부분 수확이 끝나는 가을에 열린 것과 달리, 영고는 한겨울인 12월에 열렸다는 거예요. 이건 부여가 농경보다 수렵과 목축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던 사회였다는 걸 보여주는 단서로 해석돼요. 사냥을 나가기 좋은 시기, 혹은 한 해 사냥철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축제를 열었을 거라는 견해가 있답니다.
영고 기간에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풀어주기도 했다고 전해져요. 온 나라가 함께 기뻐하는 축제 기간만큼은,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던 셈이에요. 이런 모습에서 영고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공동체의 화합을 다지는 정치적·사회적 장치로도 기능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이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부여의 풍습들을 들여다보면, 죽음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돼요. 순장이라는 풍습은 오늘날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죽음 이후에도 삶이 이어진다는 나름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던 거예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한 사회의 풍습을 이해하려면 그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에요. 우제점법이나 영고 같은 풍습도 결국 부여 사람들이 자연과 공동체, 그리고 하늘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단서인 것 같아요.
마무리 요약
부여는 사출도라는 독특한 정치 체제를 갖춘 나라로,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이 함께 묻히는 순장 풍습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여기에 소의 발굽으로 점을 치는 우제점법,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는 형사취수제까지, 지금 기준으로는 낯선 풍습들이 여럿 남아 있답니다. 반면 매년 12월 열린 영고 제천행사는 죄수까지 풀어주며 온 나라가 함께 즐긴 축제로, 부여 사회가 수렵과 목축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걸 잘 보여줘요. 이런 풍습 하나하나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창인 것 같아요. 다음 글에서는 부여에서 갈라져 나와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호령한 고구려의 건국 이야기를 이어서 다뤄볼게요.
참고한 자료: 《삼국지》 위서 동이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개설서, 국내 고대사 연구 논문 및 개설서